현재 근무하시는 회사/기관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현재 Wageningen University and Research (바흐닝헨 대학, WUR)에서 농촌사회학 박사과정 중입니다. 바흐닝헨 대학은 1918년 네덜란드 정부에 의해 설립된 국공립 대학 및 연구소로, 유럽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농생명과학 및 농업농촌개발 분야 연구에 독보적인 위치와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방법으로 자연과 인류의 삶을 개선시키는 연구를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입니다. 자연과학 (농생명과학) 분야는 물론, 식량생산, 소비 및 유통, 소비자 건강 등에 관련된 사회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자연과 환경, 농업이 인류의 삶에 미치는 상호간 영향을 학제간 포괄적으로 연구하고, 과학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현실에 빠르게 도입이 가능한 실용적인 정책안이나 혁신적인 개선방안 등을 유럽연합, 국제기구, 각국 정부 등에 자문하는 싱크탱크의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공부/연구/직업을 선택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저는 경제학, 국제개발학 전공 후 사기업 및 국제개발섹터에서 17년 동안 근무 해 왔습니다. 정부, 국제연합(UN), 국제엔지오, 개발 컨설팅 회사 등에서 농업농촌개발 및 젠더 분야 전문가/전문분야 컨설턴트 (Agricultural and Rural Development Specialist)로 활동해 왔으며, 현재는 농업혁신과 젠더문제를 주제로 박사과정 중입니다. 제가 일하는 분야에서는 주로 농업과 농촌경제에 의존하는 저중소득국가 (Low and Middle Income Countries)의 사회경제발전이 인간의 권리와 존엄을 중심으로 공정하고, 포용적으로, 지속가능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정책 및 프로그램들을 개발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농업활동은 경제적인 활동일 뿐 아니라 농촌경제사회 공동체를 지탱해 나가는 장(場)으로, 기후변화 등의 환경적 요소는 물론, 정책, 정치, 종교, 사회규범 등 사회문화적 환경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인들이 유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분야입니다. 때문에 농업개발을 연구함에 있어 농생명과학기술의 발전을 넘어선 학제간 연구가 통합적, 전문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나라와 기관에서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네덜란드는 주로 농업분야를 중심으로 국제사회의 빈곤퇴치나 발전에 기여하고 있고, 업계 내 많은 흥미롭고 유용한 연구가 바흐닝헨 대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학제간 교류를 통해 가장 새롭고 혁신적인 기술을 정책이나 개발프로젝트에 직접 채택 및 반영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네덜란드에 있는 바흐닝헨 대학을 선택했습니다.

 

네덜란드 과학 기술자 협회와 인연을 맺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과협과 관련된 에피소드나, 과협에게 바라는 점을 이야기 해주셔도 좋습니다.

사회과학자로서 과협에 기여할 수 있는 바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자연/이공계 유학생분들이 국제기구나 국제연구기관 등에서 일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문의를 종종 해 오셔서 이번 기회를 통해 자연/이공계 과학자로서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데 보다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소개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흔히 농업기술을 포함한 과학기술은 본질적으로 인류발전에 기여하는 선한 것이나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은데, 학계가 지식생산의 주체로 정책단위의 의사결정부터 사기업의 기술개발까지 다양한 단계에서 큰 영향을 끼친다는 관점에서 볼 때 누가 펀딩을 하고, 어떤 주제로 연구를 하고, 누구를 위한, 누구를 대상으로 (실험) 한 연구인지, 사회적인 가치창출 및 이익이 어느 특정 그룹으로 기울어지거나, 특정 그룹을 배재하지 않는지 등에 대한 과학철학 및 사회적인 관점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사회통합과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고, 국제사회에서 본인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활동하시려는 분들이 늘어나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바흐닝헨 대학에도 학제간 통합으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통합 혹은 교차 전공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자연/이공계 전공을 사회적인 문제와 연결해 학제간 통합 해결방안을 도모하는 전공들입니다. 환경 및 기후 문제, 에너지 문제, 정보통신 기술로 인한 사회문제 등으로 학제간 전문가들이 긴밀히 협업을 하고 있어 사회문제에 대한 다학제간 해법에 관심이 있는 과협 회원분들과 공유하고 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도모해 보고 싶었습니다.

 

인더스트리와 아카데믹 커리어 사이에서 고민이 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되는데, 커리어를 결정하는데 고려해야 할 만한 점이 무엇일까요?

저는 경제학을 전공하고 사기업에서 약 4년을 일한 뒤 커리어 패스를 변경하기 위해, 스웨덴에서 석사를 하고 약 11년 정도 관련 분야에서 일을 하다 박사를 결정한 케이스 입니다. 박사 전 15년을 전문분야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사회문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과 현상들에 대한 질문을 갖기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봅니다. 박사가 아카데믹 커리어의 디딤돌인 것은 분명하나, 저의 경우 석사에서 습득한 지식과 기술들을 11년 동안 정책이나 프로그램개발에 쓰다 보니, 보다 혁신적인 해법이 있는지, 거대한 담론에 갇혀 기계적으로 일하고 있지는 않은지, 더 비판적인 관점에서 제가 하는 일을 돌아보고자 학계로 돌아온 케이스 입니다. 물론 전공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인더스트리에서 오래 일하신 분들 중 본인이 종사하고 있는 업계의 사회적 가치창출에 대해 고민하고 계신 분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인더스트리나 아카데믹 커리어 모두 사회적으로 중요한 행위자로 활동하는 장이라고 보고, 직장/직업을 선택하는 방향의 고민을 넘어,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업(과업)을 선택하느냐가 생을 길게 볼 때 더 적절한 고민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인의 성격, 흥미, 경제적 안정 등의 다른 요소도 중요하지만 많은 경우 커리어의 중간단계에 이르러 한번쯤 내가 하는 일과 나의 가치관 (개인적 삶이나 사회적 삶에 대한)을 되돌아보게 되는 시점이 있는 것 같고, 이런 성찰이 직업 만족도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도 무시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희 대학에는 경력이 10-30년 정도의 경력을 가지고 석박사를 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커리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쉬운 결정일 수는 없겠으나, 업이 중심이 된다면, 인더스트리에서 일하다가도 학계로 돌아올 수 있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교수가 되는 것이 목적이거나 하는 경우는 예외일 수 있으나, 두 커리어 사이에서 꼭 한개를 선택한다기 보다 어떤 분야에서 어떤 식으로 개인의 삶을 꾸리고, 사회적 삶에 기여하고 싶은가를 고려해 보는 것도 장기적인 커리어 방향을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과 비교해서 네덜란드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하는데 특별한 장단점이 있나요? /네덜란드에서 박사과정의 특징과 자리를 찾으신 준비과정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한국의 석박사 과정을 경험해 보지 않아, 둘을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네덜란드 안에서도 학교나 전공, 프로젝트 지도교수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장점을 꼽자면, 박사를 할 수 있는 경로와 방법이 다양한 것, 실용주의적 풍토 때문에 실무경력이 높게 인정되는 점, 연구환경이 유동적이고 인간중심적이라는 것, 분야 내 유럽 및 국제 네트워크에 대한 접근성이 확장된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저희 대학은 학교나 프로젝트를 통해 고용된 연구직 박사와, 실무와 연구를 병행할 수 있는 샌드위치박사 (Sandwich) 및 외부박사 (external PhD) 등의 경로가 있는데, 개인의 목적, 사정, 경력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박사계약 및 고용의 형태 등을 타진해 볼 수 있습니다. 또, 많은 경우 박사생 선발은 여전히 학부나 석사 성적을 기준으로 스크리닝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희 학교는 선발시 실무경험이나, 이를 바탕으로 한 연구주제와 계획수립, 해당 연구의 사회적인 기여도가 우선이 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면담시 왜 해당 주제에 대한 의문이 생겼는지, 어떻게 연구과제를 풀어가고, 실용적인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지 가능성에 주목한다고 느꼈습니다.  또, 업무시간 집중도나 생산성은 높은 반면, 개인의 생애주기나 개인적 상황에 따라 가장 일하기 좋은 연구환경을 유동적으로 형성해 주고 지원해 준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학교 내에서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한 경우, 대부분의 교수님들과 연구원들이 기꺼이 시간을 할애해 상보적이고 호혜적으로 연구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저의 경우 이미 일하는 섹터에서의 네트워크가 일부 형성되어 있으나, 바흐닝헨 대학의 졸업생들이 유럽연합 및 국제기구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어, 회의, 세미나, 다양한 소그룹 행사 등을 통해 기존 네트워크를 넘어선 전문가 그룹에 대한 접근성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기타 자유롭게 해주시고 싶은 이야기

흔히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적이라고 생각되지만, 과학기술은 특정 그룹의 이익을 대변하고 옹호하는데 쓰이기도 하고, 그 혜택이 모두에게 균등하게 돌아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방위산업체 관련 기술은 기술개발을 하는 나라의 군사적 방위나 무기수출 등으로 국부에 기여하지만, 반대로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해당 기술로 인해 만들어진 무기의 피해를 입는 사람들도 생기게 됩니다. 또, 이번 팬데믹 위기에서도 보았듯 백신과 같은 바이오테크 기술 또한 모든 나라의 모든 국민에게 공정하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백신을 단기에 개발 할 수 있는 재정적, 기술적 여력이 되는 국가들, 이를 구매 할 수 있는 현금을 보유한 국가들, 이들과 긴밀한 정치적 협의체를 구성하고 있는 국가들의 국민들이 우선적으로 효과가 더 높은 백신을 공급받았고, 해당 백신 공급자들은 공적자금이 투입되어 개발된 백신에 배타적인 특허권 보호를 걸어 복제를 제한하고, 백신 불평등을 해결하는데 장벽이 된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농업혁신기술 또한, 식량증산이나 품질 개선, 병충해 관리 등을 위해 사용되기도 하지만, 저소득국가 농민들이 선진국 소비자들을 위한 농산품, 기호식품, 화훼, 바이오연료 작물 재배를 위해 본인들이 소비해야 하는 주곡을 포기하고, 단일종 환금작물의  대량 및 집중 생산을 강요받는 도구로 쓰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기술은 인위적으로 농업활동에 관여해 직간접적으로 지구의 생물다양성을 파괴하고, 사회, 문화, 환경적 생태계를 위협하는데 기여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어떤 과학기술은 많은 사람들을 고통에서 해방시키고 삶의 질을 개선하기도 하지만, 어떤 기술은 소수를 통해 독점되고, 그들의 이익만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이번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사태로 보았듯 한 지역 및 국가의 질병, 분쟁, 농업의 성패, 빈부격차는 지구 공동체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기술이 필요한 기술이고 적정기술인지,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인지, 어떤 모델과 방법론으로 연구가 이루어지고 결과가 해석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기술의 혜택이 분배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가치 판단 역시 과학자들이 피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떤 연구를 하는가는 매우 정치적인 일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과학기술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 누군가의 삶에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개인의 과학자들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누구를 위한 연구를 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과학자로서 내가 생산하는 지식과 기술이 어떤 가치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지, 또 어떤면에서 세상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보는 과협이 되었으면 합니다.

KOSEANL X KSAN 릴레이 인터뷰 열번째– 정다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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