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근무하시는 회사/기관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SiLnD (Speech into Language and Data)는 음성기술 전문 컨설팅 회사로서, 마이크로소프트나 폭스바겐 등의 대기업을 비롯하여 유럽 여러 중소기업에 음성합성이나 인식 프로그램 개발에 관한 기술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내년부터는 그 사업 영역을 확장하여 유럽연합의 인공지능 개발 윤리나 다양한 기술의 시장 분석 쪽으로의 컨설팅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공부/연구/직업을 선택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프랑스에서 언어학 박사학위 공부를 마쳐가던 중에, 네덜란드인인 남편을 만나 이곳 네덜란드로 오게 되었습니다. 전혀 계획에 없던 나라로 오게 되어 여러가지로 막막했었지만, 다행히 곧 포르투갈 리스본에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언어개발팀에서 업무 제안을 받게 되었고, 그래서 2009년 봄 무렵부터 제가 독립하여 창업을 한 2016년 가을까지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에서 온/오프라인 근무를 병행하며 경력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네덜란드 과학 기술자 협회와 인연을 맺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과협과 관련된 에피소드나, 과협에게 바라는 점을 이야기 해주셔도 좋습니다.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에 재불과협에 관해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직접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과협이라는 단체의 활동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던 참에 우리 네덜란드에도 과협이 생긴다고 하여 창립 때부터 참여를 했습니다.
부지런히 쫓아 다니는 모습을 다른 회원분들이 좋게 보셨던지 2018-2019 년도에는 회장직을 맡겨 주시기도 했지요.
인더스트리와 아카데믹 커리어 사이에서 고민이 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되는데, 커리어를 결정하는데 고려해야 할 만한 점이 무엇일까요?
학계와 산업체 사이의 고민은 경력 초기에 모두가 겪는 내용일 것입니다. 전공 분야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학계에 비해 산업계 인력에게는 더 큰 유연성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학계의 일정에 큰 기준이 되는 학회나 학사일정 및 학술지 출판 일정은 미리 계획된 내용에 큰 변경이 생기지 않는 것에 비해, 산업계의 제품 개발 계획은 최종 일정이나 핵심 기술 적용 범위 등이 수시로 바뀔 수 있어서 그러한 부분에 유연하고 유능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성취감이라는 부분을 보자면, 내가 개발에 참여한 제품이 실제로 출시되어 호평을 받을 때에 느끼는 감정과, 내 연구 결과가 주요 학술지에 등재되거나 내가 가르친 제자들이 해당 분야에서 큰 몫을 해내는 것을 볼 때의 감정은 보람과 뿌듯함이라는 면에서 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재 가지고 계신 직업에서 필요로 하는 중요한 능력/역량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어느 직업이나 분야를 막론하고 맡은 일은 “잘” 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혹은 “최선을 다해” 하는 것은 학생일 때에는 좋은 자세이지만, 어떠한 일을 직업으로 삼고 보수를 받는 경우라면, 학생 시절에 쌓은 전문 지식을 닥친 상황과 주어진 목적에 맞게 적절히 활용하여 필요한 기한내에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진정한 전문가의 역량이 필요하겠지요.
지금까지 연구나 회사에서 근무 하면서 이루었던 대표적인 성과는 무엇인가요?
앞서 질문에도 언급했듯이, 산업계의 특징 중의 하나로 자신이 개발에 참여한 제품이 실제로 판매되고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오랫동안 음성기술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Scansoft, Nuance, Audi, Porsche 등 여러 회사의 한국어나 프랑스어 음성합성 및 인식 제품 개발과 개선에 실무자로 참여했었고, 오랫동안 팀 매니저로 일했던 Microsoft 사에서는 Cortana 의 기획 초기부터 참여하여 여러 나라에 있는 언어 전문가들과 컴퓨터 엔지니어 및 인공지능 전문가들 사이의 학제간 (interdisciplinary) 원활한 소통과 협력을 만들어 낸 것이 스스로 돌아 볼 때 뿌듯한 부분입니다.
학업이나, 생업에 종사하시면서 슬럼프를 겪으신 적이 있나요? 있으시다면, 어떻게 극복하였는지 궁금합니다.
인생은 하루하루 매 시간시간이 기쁨이자 슬픔이며 피크이자 슬럼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도 심정적으로 어떤 절망의 깊이나 길이가 조금 더 크고 길었던 경우들 중 하나를 꼽는다면, 아마도 네덜란드에 와서 체류증을 신청하고 그때까지 갖고 있던 프랑스 체류증이 만료가 되던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에서 불문학과 불어학을 공부할 때부터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화에 대한 애착이 컸었는데 갑자기 프랑스도 한국도 아닌 네덜란드에 살게 되었고, 그나마 갖고 있던 프랑스 체류증도 만료가 될때의 느낌은,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기약 없는 곳으로 떠나 버렸을 때의 그것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처음에는 한국어 제품 개발에만 참여하던 제 업무 영역이 프랑스어로 확장 되었고, 또 창업 후에도 프랑스어 제품 개발이나 프랑스의 여러 정책에 대한 자문 활동도 하게 되어 프랑스어와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있으니, 젊은 한때를 다 바친 내 사랑은 결코 배신을 하지는 않는구나 했지요.
기타 자유롭게 해주시고 싶은 이야기
이 인터뷰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는 현재 학생이거나 경력의 초기에서 앞으로의 미래를 계획하고 있고, 그렇기에 설레임과 두려움이 늘 함께하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앞선 질문 들에서 산업계의 특징이나 전공분야의 특성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지만, 경력을 포함한 인생 전반을 만들어 가는데 있어서 우리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자질은, 내 자신을 잘 알고 그에 따라 행복을 설계하고 만들어가는 능력, 즉 스스로에 대한 리더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택할 때, 분야에 대한 전망이나 외부의 평판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그 일이 내가 정말로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인지, 그래서 그 일을 할 때 내 얼굴에는 땀이 흐르지만 입가에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띠고 있을 자신이 있는 일인지를 제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